걸음 속도, 왜 여섯 번째 활력징후라 부를까요

부모님과 함께 길을 걷다가 "엄마 걸음이 언제 이렇게 느려지셨지?" 하고 놀란 적 있으신가요? 대부분은 나이 들면 다 그렇다며 넘기지만, 걷는 속도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 주는 숫자예요. 오늘은 걸음 속도를 두고 나온 연구 이야기를 쉽게 풀어 볼게요.
여섯 번째 활력징후라는 말
병원에서 몸 상태를 볼 때 가장 먼저 재는 것이 혈압, 맥박, 체온, 호흡이에요. 이런 기본 숫자를 활력징후라고 부르죠. 그런데 2009년, 노인 물리치료 분야 학술지에 실린 한 글은 제목부터 이렇게 말했어요. 걸음 속도는 여섯 번째 활력징후라고요 [2]. 재는 법이 간단하고, 특별한 장비 없이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숫자라는 점이 이런 이름이 붙은 까닭이에요.
어르신 3만 4천여 명을 오래 지켜본 연구
이 생각을 큰 자료로 확인한 연구가 2011년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렸어요 [1]. 연구진은 9개 연구에 참여한 65세 이상 어르신 34,485명의 자료를 한데 모았어요. 처음에 걸음 속도를 재 두고, 짧게는 6년에서 길게는 21년까지 지켜봤지요. 참여한 어르신들의 평균 나이는 73.5세였고, 여성이 59.6%였어요. 평균 걸음 속도는 1초에 약 0.92미터였지요 [1].
결과는 분명했어요. 9개 연구 모두에서 걸음 속도와 생존 사이에 관련이 나타났고, 걸음 속도가 1초에 0.1미터 빠를수록 사망 위험비는 0.88로 낮아지는 쪽이었어요 [1]. 느린 쪽에서 빠른 쪽까지 전 구간에서 이런 흐름이 이어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해요.
걷는 모습에 왜 많은 것이 담길까요
걷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몸의 여러 부분이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에요. 심장과 폐가 숨과 피를 보내 주고, 다리와 허리의 근육이 몸을 밀어 주고, 관절이 부드럽게 굽혀져야 하지요. 여기에 눈과 귀, 발바닥의 감각이 균형을 잡아 주고, 뇌와 신경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조절해요. 그래서 이 가운데 어느 한 곳이라도 힘들어지면 걸음이 조금씩 느려질 수 있어요. 걸음 속도 하나에 여러 몸 상태가 한데 비친다고 볼 수 있는 까닭이에요.
검사 여러 개만큼 걸음 속도 하나가
이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어요. 나이와 성별에 걸음 속도만 더해 앞날을 예측해 봤더니, 나이와 성별에 지병, 흡연 이력, 혈압, 체질량지수, 입원 기록까지 모두 넣어 예측한 것과 정확도가 비슷했다고 해요 [1]. 여러 검사를 모아야 알 수 있는 정보가 걷는 모습 하나에 꽤 많이 담겨 있다는 뜻이에요.
다만 이 연구는 오랫동안 지켜보며 관계를 본 연구예요. 걸음이 느리면 반드시 어떻게 된다는 뜻은 아니고, 걸음 속도만으로 병을 가려낼 수도 없어요. 몸 상태를 살피는 여러 신호 가운데 하나로 보면 좋겠어요.
1초에 1미터, 횡단보도가 기준으로 삼는 걸음
그렇다면 1초에 몇 미터면 빠른 걸음일까요? 우리 주변에 좋은 기준이 하나 있어요. 바로 횡단보도 초록불이에요. 서울시 설명에 따르면 보행 신호 시간은 보통 보행속도 1m/s를 적용해 횡단보도 길이 1m당 1초로 계산하고, 노인보호구역과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교통약자를 생각해 보행속도를 최대 0.7m/s로 적용한다고 해요 [3].
앞의 연구에서 어르신들의 평균 걸음 속도가 1초에 약 0.92미터였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일반 횡단보도의 기준보다 조금 느린 셈이에요 [1][3]. 부모님이 초록불이 깜박일 때 서두르시거나, 예전보다 건너는 데 시간이 걸리신다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 볼 만해요.
부모님 걸음, 이렇게 지켜봐 주세요
걸음 속도는 하루아침에 바뀌기보다 천천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한 번 재는 것보다 평소와 비교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해요. 함께 산책하실 때 늘 걷는 길을 걸리는 시간이 예전과 비슷한지, 오르막에서 자주 쉬시는지 살펴보세요. 갑자기 눈에 띄게 느려지셨거나 자주 휘청이신다면 혼자 판단하지 마시고 의료진과 상의해 보시는 것이 좋아요.
무엇보다 부모님께는 "걸음이 느려지셨네요"라는 말보다 "오늘 같이 좀 걸을까요?"라는 말이 훨씬 반가울 거예요. 걷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관찰이자 응원이에요. 이번 주말, 부모님 댁 근처 산책길을 함께 걸으며 오늘의 걸음을 같이 느껴 보시면 어떨까요?

